2021년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은 MCU 최초의 아시아계 히어로 단독 영화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중국계 캐나다 배우 시무 리우가 주연을 맡았으며, 동양 무술과 마법, 전통 신화적 요소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마블 세계관의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 전통과 현대의 충돌, 개인의 성장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는 기존 마블 영화와 차별화된 감성과 스케일을 선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줄거리 요약, 캐릭터 정체성, 무술 및 문화적 요소, 그리고 영화가 가지는 의미(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리뷰합니다.
과거의 유산을 넘어서: 샹치의 정체성 찾기
영화는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전설적인 존재 ‘웬우’(양조위 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웬우는 신비한 힘을 지닌 ‘텐 링즈’를 이용해 전 세계를 지배해 온 존재로, 어둠과 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신비한 마을 ‘탈로’에서 수호자 ‘잉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문과 군대를 버리며 새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주인공 샹치(시무 리우 분)는 어린 시절 아버지 웬우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웬우는 다시 폭력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샹치는 14세에 가문을 떠나 미국으로 도망칩니다. 이후 그는 ‘션’이라는 가명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주차 대행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웬우의 조직 텐 링즈가 샹치를 찾아오고, 그들은 어머니가 남긴 목걸이를 강탈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샹치는 동생 샤링(장멍얼 분)을 찾아 마카오로 향하게 되고, 결국 가족 간의 갈등과 비밀에 휘말리며, 다시금 아버지와의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샹치가 과거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에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무술 고수가 아닌, 내면의 상처와 유산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영웅성’을 찾는 여정을 걸어갑니다. 이 과정은 기존 마블 히어로와는 다른, 매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성장 드라마로 풀어집니다.
화려한 액션과 동양 무술의 향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영화답게 화려한 액션 시퀀스가 돋보이지만, 다른 시리즈와 확연히 다른 무드를 갖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동양 무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액션 연출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첫 번째 주요 액션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버스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부부터 샹치의 신체 능력과 무술 실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며, 마블 영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철봉과 난간을 활용한 유연한 몸놀림은 홍콩 무협 영화의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템포와 유머가 조화를 이룹니다.
이후 마카오의 격투 클럽, 옛 텐 링즈 본부, 그리고 판타지 세계 ‘탈로’에서 벌어지는 전투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의 무술과 CG가 결합된 장면들로, 시각적인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특히 탈로에서 펼쳐지는 최후의 전투는 중국 전통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용과 괴수, 마법의 힘이 등장해 기존 마블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미학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영화는 ‘폭력의 목적’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집니다. 아버지 웬우는 사랑을 잃은 상실감으로 폭력을 선택하지만, 샹치는 그 폭력을 넘어 화해와 보호를 위한 싸움을 택합니다. 이는 동양 무술이 단순한 공격 수단이 아닌, 철학과 명분의 도구임을 강조하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가족, 상처, 그리고 선택이라는 중심 메시지
이 영화의 중심은 결국 ‘가족’입니다. 샹치와 아버지 웬우, 여동생 샤링, 그리고 죽은 어머니 잉리까지. 네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혈연을 넘어 상처와 오해, 사랑과 화해의 복잡한 층위를 지닙니다.
웬우는 악당이라기보다는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힘을 통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잃은 뒤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아내를 다시 되찾기 위해 아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인물로, 그 비뚤어진 사랑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입니다.
샹치는 그런 아버지의 길을 거부하지만, 동시에 그를 증오만 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 웬우는 자신의 모든 힘인 텐 링즈를 아들에게 넘기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며, 그의 마지막 선택은 ‘사랑의 회복’입니다.
샤링 역시 오빠 샹치가 떠난 뒤 혼자 남겨졌다는 상처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 인물로 성장하며,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조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와 감정의 무게를 그려내며 깊이를 더합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의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 공식을 따르면서도, 아시아 문화, 무술, 가족 서사, 판타지적 요소를 새롭게 조합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액션의 신선함, 감정선의 깊이, 문화적 다양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 영화는 마블 유니버스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샹치’는 단지 새로운 히어로가 아닌, 기존 마블이 다루지 않았던 정체성과 유산, 가족이라는 주제를 품고 등장한 상징적 캐릭터입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경험하고 싶다면, 반드시 감상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